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벤저민 해리슨 (문단 편집) === 정계 입문 후 === 종전 후 공화당에서 활동하며 인디애나 주지사에 2번 출마하지만 낙선한다. [[1881년]]에 가문의 힘이 작용하여 인디애나 주의회가 만장일치로 해리슨을 연방 상원의원으로 선출[* 1913년 [[수정헌법]] 17조가 비준되기 전에는 연방 상원의원을 직선제가 아닌 주의회 간선으로 뽑았다.]하지만 [[1887년]]에 [[민주당(미국)|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상원에서 다시 낙마한다. 낙선한 해리슨은 이듬해인 [[1888년]]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하고 후보로 선발되어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상대로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당시 공화당은 부패하고 타락한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클리블랜드의 강직함과 개혁 열풍 때문에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지지받는 상황인데 해리슨도 클리블랜드 못지 않게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로 평가받아서 불리하지만은 않았다. 해리슨은 퇴역군인의 연금 지급, 흑인의 시민권 부여, 수입품에 대한 높은 관세 유지를 주장하는 등 현안에 중점을 두어 선거운동을 벌였으나 해리슨의 참모들은 클리블랜드에 대한 흑색선전과 비방을 일삼아서 해리슨의 생각과 주장은 빛이 바래버리고 만다. 그리고 참모들은 영국 대사에게 선거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는데 영국 대사는 자신들은 클리블랜드를 원한다고 거부하자 이것을 역으로 홍보해 클리블랜드는 친(親)영국파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 여파로 영국의 앙숙이자 클리블랜드가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뉴욕의 아일랜드계 유권자들이 클리블랜드에게 등을 돌린다. 결국 대선에서 클리블랜드는 해리슨에게 90,000여표 앞섰지만 선거인단에서 233:168로 패배하면서 결국 해리슨이 백악관의 주인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